[리뷰]안전에 미쳤던 스칸디나비아 車, ‘사브(SAAB)’

2015. 9. 22. 19:42자동차이야기

 

 

 

 

사브 9000(사진)

 

[HOOC=서상범 기자]얼마 전 한 통의 보도자료를 받았습니다. 캐딜락을 수입, 판매하는 지엠코리아에서 보낸 자료였는데요. 캐딜락과 관련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용은 달랐습니다. 바로 스웨덴 자동차 ‘사브(SAAB)’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지엠코리아가 사브 고객을 대상으로 엠블럼 교체 서비스를 한다는 자료였죠. 이 자료를 보는 순간 사브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에야 북유럽 차하면 볼보를 떠올리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90년대와 2000년대 북유럽 차의 대표주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업체가 바로 사브였죠. 

 

두 회사 모두 스웨덴에 뿌리를 둔 회사라는 점과 안전에 목숨을 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한 때 국내 수입차 시장 1,2위를 다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두 회사의 운명은 갈림길을 걷게 됩니다. 독일차의 공세에 생존이 위태로웠던 볼보는 안전이라는 가치에 젊은 감성을 장착하며 다시 한번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죠. 하지만 사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1937년 스웨덴의 항공기 제작 회사로 출발한 사브는 높은 기술력과 안전에 대한 광기(狂氣)로 전세계에 이름을 떨쳤습니다. 특히 전세계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 적용한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회사가 사브였죠. 3점식 안전벨트를 만든 엔지니어는 닐슨 볼린이라는 사람입니다. 이사람은 사브에서 항공 안전장치 엔지니어로 일했죠. 이후 볼보에서 이 사람을 스카웃했고 사브에서 항공기 비상탈출 장치를 만든 경험을 살려 3점식 벨트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당시 안전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던 두 회사에서 이 엔지니어를 놓친 사브가 얼마나 가슴아파했는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후 사브는 안전에 관한 무서울만큼의 집착을 보입니다. 운행 중 발생한 수천건의 사고 데이터를 수집해 개선책을 찾고, 갖가지 충돌테스트를 통해 자신들의 안전기술을 대내외에 과시했죠.

여기에 항공기의 터빈을 엔진에 적용한 터보 승용차를 개발하는 등 성능적인 부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튼튼하면서도 퍼포먼스가 좋은 차라는 명성을 얻으며 전세계적으로 북유럽 차 돌풍을 일으키죠.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중후반 고소득층, 특히 여성 운전자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특히 중형세단 ‘9000’ 은 원조 강남 사모님차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무지막지한 투자 때문이었을까요? 경영이 사브의 발목을 잡습니다. 1990년 지엠이 사브의 지분 50%를 보유하며 스카니아와 분리된 사브는 2000년 나머지 지분도 지엠이 인수하며 지엠의 자회사로 편입됩니다. 이후 판매 부진 등 경영 악화로 GM은 사브의 매각을 추진하는데요. 결국 2010년 네덜란드의 소규모 스포츠 카 제조 업체인 스파이커로 현금 4억 달러에 매각되는 아픔을 겪었죠.

이후 스파이커가 스웨디시 오토모빌로 이름을 바꾸고 북유럽 혈통을 강조하며 재기를 꿈꿨지만 인수 9개월만에 자금난을 겪고 2년이 안돼 파산신청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자본으로 매각을 시도했지만 기술 유출을 우려한 지엠의 제동으로 이또한무산되고 말았죠. 결국 사브는 현재 중국계 에너지 기업과 일본계 투자기업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전기차스웨덴AB(NEVS)’에 매각돼 전기차로 부활을 꿈꾸고 있는데요.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1995년 본격적으로 수입이 시작됐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중형세단 9000과 소형세단 900이 매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후속모델인 9-5와 9-3 역시 투박하지만 강인해보이는 디자인과 안전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로 두터운 팬층을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인기로 한때 한국에 독자법인까지 진출했지만 지엠의 인수와 함께 한국에서도 지엠코리아가 판매를 담당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지엠코리아가 현재도 사브 고객들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하지만 모기업의 쇄락과 함께 한국 시장에서도 사브는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2004년 357대를 판매했던 사브는 2005년 284대, 2006년 195대 등 계속해 판매가 감소하다 결국 2009년 12월에 마지막 한 대를 판매한 뒤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현재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사브는 모두 2562대이며 이중 지엠코리아가 관리하고 있는 차량은 약 850대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 사브매니아들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카페 등을 통해 더이상 수급되지 않는 부품, 차량 관리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며 사브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지엠코리아의 서비스도 이런 일환 중 하나입니다.

사브의 추억을 잊을 수 없는 이들은 우리나라 뿐만은 아닌데요. 스웨덴에서도 ‘SAVE THE SAAB’라는 이름의 캠페인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사브는 안전만 바라보던 바보같은 회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고집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동차 안전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 이런 바보같은 회사가 앞으로도 우리 곁을 계속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사브 9-5(사진)

 

 

 

 

 

 

 

사브 9-3(사진)

 

 

 

 

사브 9-3 컨버터블(사진)

 

 

 

 

사브 자동차 액세서리(사진)

 

 

사브 자동차의 새로운 스포츠 쿠페 컨셉트카 모델(사진)

 


글:서상범 기자 tiger@heraldcorp.com

 

*안전에 관한 내용중 3점식 안전벨트를 사브가 최초 개발했다는 부분을 수정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지적해주셨듯이 벨트를 개발한 것은 볼보가 최초인데요. 관련 내용을 찾던 중 사브에서 일을 했던 개발자가 볼보로 이직해 개발한 부분을 미처 꼼꼼히 챙기지 못하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혼란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앞으로도 더욱 많은 지적과 관심 부탁드립니다.